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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vi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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롱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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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카미 하루키, <해변의 카프카>에 대해 이야기하다
15세의 주인공에 대하여 (1)
――15세의 소년을 주인공으로 한 것은 꽤 이른 단계에서 이미 정해져 있었나요?

네, 정해져 있었지요. 아무튼 15세 소년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움지겨 보자고. 그렇게 하면 모든 것이 잘 되어 갈 것 같았어요. 그것은 집필을 시작하기 1년 전에 결정했었고, 그 아이디어를 머리 속에서 계속 담그고 있었어요. 그 소년이 움직이기에 편한 환경을 의식 속에서 조금씩 조금씩 만들어 간 거에요. 그러고 나서 이제 그런 환경이 정비되었다고 느꼈을 무렵부터 쓰기 시작했지요. 저는 소설을 쓰는 것에 대해서는 상당히 누긋한 편이랄까, 잘 기다리는 편이에요. 꼼짝 않고. 타이밍이 거의 다예요.

――<스프트니크의 연인>의 종반 부분에 소년이 나오는데, 그의 인상이 아주 강했어요. 그 당근이라는 소년과 이번 소설에 나오는 소년과는 관련이 있는 건가요?

전혀 깨닫지 못했군요(웃음). 하긴 듣고 보니 그런 것 같기도 하네요. 관련이 있을 지도 몰라요. 사실 그 <스프트니크의 연인>라는 소설에는 원래 당근이라는 소년이 나오지 않았어요. 나온다 해도 기호적인 존재에 지나지 않았지요. 그런데 소설의 인상이 너무 희미하게 되더라고요. 그래서 고쳐 쓰는 단계에서 자연스레 그의 존재가 부풀어 올라 왔어요. 스스로 부풀어 올라, 스스로 움직이기 시작했어요. 그리고 그가 전면에 나옴에 따라 소설이 새로운 힘 같은 것을 지니기 시작했지요. 요컨대, 스미레가 차차 혈육을 잃어 가면서 그대신 당근이 점점 혈육을 지니기 시작했다. 그런 다이나미즘의 시프트가 있었던 거에요. 이 <해변의 카프카>에도 거기서 계속되는 부분은 있을 지도 모르네요. 전혀 의식하지는 않았고, 또 당근은 초등학생인데 이번 주인공은 15세이니까 연령적으로도 차이는 있지만요.

제 소설에는 지금까지 20대 후반부터 30대 전반쯤의 주인공이 많았는데, 그것을 이번엔 15세로 함으로써 소설적인 시점을 여러 방향으로 시프트할 수 있는 위치를 찾아냈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저 자신이 아주 자유로워졌다는 감각이 있었어요. "나이면서 내가 아니다"라는 자립성 같은 것이 더욱 확실해졌다 랄까요.

소설을 쓴다는 작업에는 자신 속에 있는 다른 인격을 찾는 여행 같은 부분이 있어요. 그러니까 너무나 자신과 가까운 것으로 시점을 설정해 버리다가는 현재의 자신과 찾아야 할 대상으로서의 다른 자신의이 혼탁될 우려가 있어요. 거리감 같은 것은 꽤 중요하다. 그런 것일 지도 모르네요. 그리고 이것은 다른 사람한테 지적을 받아서 알게 된 것인데, <스프트니크의 연인>는 전반과 후반에서 문체가 달라져 있었다고요. 저는 몰랐는데 그런 말을 듣고 다시 읽고 보니 확실히 달라져 있더라고요. 그것은 요컨대, 전반 부분에 저는 자신의 기성의 문체 같은 것을 주저없이 과인할 정도로 써 가면서, 그것에 지친 것 같은 상태가 되었었겠지요. 그래서 그 시점에서 새로운 문체 같은 것이 쑥 나왔다는 게 아닐까요? 그런 작업이 비교적으로 자연스럽게 잘 되어 갔다는 감촉은 있었어요.

――하루키 씨는 15세 때 어떤 소년이셨습니까?

제가 15세 때는 약간 이상했을까요? 어떤 면에서는 아주 보통 아이여서 산에 오르고나 바다에서 수영하거나 해서 친구들과 활발하게 놀고 있었는데, 그러는 동시에 이상하게 독서를 좋아하는 아이였지요. 왜아들이기도 해서 일단 틀어박히면 그만, 고독이라든가 참묵이라는 것은 전혀 고통스럽지 않았어요. 오오츠키(大月) 서점에서 나온 <맑스/엥겔스 전집>을 용돈으로 몇 권이나 사서 읽고 있었어요. <자본론> 같은 것은 당연히 너무 난해한데, 그래도 상관 않고 읽다 보면 제법 이해할 수도 있더군요. 문장도 딱 확실하고 그런대로 느껴지는 데가 있어요. 카프카, 도스토에프스키는 물론 거의 다 독파했었지요. 그런 부분은 보통 아이가 아니었는지도 몰라요.

어떻든 책은 많이 읽었어요. 그리고 음악도 많이 듣고 있었지요. 모던 재즈에 빠진 것도 그 무렵이었어요. 가출은 안 했지만요(웃음). 저의 경우, 강렬히 내성적인 부분과, 그러면서 physical하고 easy한 부분이 공존하고 있었던 것 같아요. 그건 지금도 그대로나 마찬가지지만요. 인간이란 그렇게 달라지지 않는 거에요.

――소설을 쓸 때에 15세 때 자신의 이미지가 되살아난다는 일은 없었습니까?

그건 없어요. 없는데, 소설가라는 것은 일단 어떤 인물을 그리기 시작하면 그 인물 속에 깊이 빠져드는 거에요. 일단 그렇게 되면 그 사람에 대한 것을 너무나 잘 이해할 수가 있어요. 그렇다기보다는 그 사람이 되고 마는 거에요. 예를 들면 <스프트니크의 연인>에 스미레라는 여자애가 나오지요. 나이는 스무살 정도이고 이야기가 진행되는 중에 레즈비안이 되고 만다. 저는 물론 스무살 여자가 아니고 레즈비안도 아니에요. 게다가 레즈비안이라는 것이 어떤 것인지, 지식으로서는 전혀 몰라요. 그러나 제게는 스미레가 생각하는 것이나 바라는 것이 이해가 돼요. 그녀가 실제로 어떤 일을 할지도 알 수 있어요. 쓰고 있을 때는 뚜렷하게 말이지요.

그러니까, 주인공인 15세 소년은 15세 때의 저와는 전혀 달라요. 조금은 비슷한 데가 있을 지 모르지만 거의 딴 인격이에요. 그러나 저는 이 소설을 쓰는 동안, 15세 소년이 될 수 있어요. 그라는 존재 속에 잠입할 수 있는 거에요. 전혀 새로운 선택지로서 저의 존재를 그의 존재 위에 겹쳐 올려 놓을 수가 있어요. 그것은 제게 있어서 아주 소중한 것이고, 동시에 독자에 있어서도 소중한 것이었으면 싶어요. 아주 소중한 것을 통해서 저와 소년과 독자가 연결될 수 있다면 그것은 근사한 일이라고 생각해요. 소설이란 게 원래 그런 것이 아닐까요?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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